끝났다. 지난 4일 ‘티빙’ 스타리그 결승전과 함께 스타크래프트(스타1) 중계가 막을 내렸다. 1998년 출시 이후 15년간 게임시장을 넘어 한국 사회를 풍미했던 스타1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스타1의 힘을 받아 탄생했던 세계 최초의 게임채널 ‘온게임넷’ PD들은 스타1의 종료를 두고 가슴 한 켠이 먹먹했다고 전했다. 미디어오늘은 스타1의 ‘흥망성쇠’를 듣고자 지난 6일 상암동 CJ E&M 본사에서 위영광 PD와 원석중 PD를 만났다. 

위영광 PD는 스타리그의 시작이었던 2000년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리그 조연출을 시작으로 온게임넷 개국(2000년 7월)멤버로 출발해 2001년 SKY배 스타리그 연출, 프로리그 연출을 거쳐 현재 온게임넷 제작총괄 CP로 있다. 원석중 PD는 2008년 EVER스타리그부터 2012년 진에어 스타리그까지 연출을 맡았으며, 지금은 스타1 이후 새로운 ‘PC방 대세’로 떠오른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일명 LOL)를 담당하고 있다. 

스타1은 e스포츠가 하나의 사회문화가 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20~30대의 감수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게임 PD들은 스타1과 함께 누렸던 영광이 다시 오긴 힘들 것이라 입을 모았다. 그만큼 스타1이 20~30대 사회에 남긴 경험은 강렬했다. 다음은 PD들과의 일문일답. 

- 지난 4일 스타1 시즌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게임PD로서 소감은. 
위영광 : 13년 전 방송연출을 시작한 이래 스타1의 시작과 끝을 같이 했다. 다른 게임 리그 연출도 많이 했지만 열정과 젊음을 바쳐 인생을 함께 한 건 스타1이었다. 지난 토요일 결승전이 끝나니까 이제 뭘 해야 하나, 생각이 들더라. 엄재경 해설위원은 자식 떠나보낸 느낌이라고 하더라. 많은 게임을 갖고 대회를 만들어봤지만, 스타1과 같은 영화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뭔가 소중한 것을 놓친 느낌이다.

원석중 : 지난 토요일 결승전은 장례식 같은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렸다. 나도 울었다. 스타1의 팬으로 시작해 연출까지 맡으며 20대를 스타와 보냈다. 지나온 추억에 대한 회상만큼 두려움도 있다. 어찌됐든 우리(온게임넷)가 제일 잘했던 것을 접어야 하고 앞으로 스타1만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는 게 사실이다. 팬들의 기억에 온게임넷은 스타1밖에 없다. 일부 팬들은 우리를 ‘온스타넷’이라 놀릴 정도였다. LOL도 분위기가 좋긴 하지만 스타1처럼 파괴력 있는 프로그램을 또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스타1은 e스포츠 영역을 개척하고 많은 스타를 배출하며 장수했다. 인기 비결은. 
위영광 : 일단 게임 자체가 너무 잘 만들어졌다. 테란과 저그, 프로토스의 상성과 밸런스가 완벽했다. 하지만 인기는 프로게이머와 유저(팬)들이 만들어냈다. 게이머들은 땀을 흘리며 연습했고, 팬들은 ‘임진록’과 ‘리쌍록’같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셔틀’ 같은 사회 신조어도 팬들이 만들었다. 게임리그라는 특성으로 인터넷접근성이 높아지자 시청자와의 피드백이 빠르고 빈번했다. 그렇게 스타1은 케이블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결승전을 하면 객석이 늘 꽉 찼지만 제작진은 늘 배가 고팠다. 게임리그가 기성세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문화였기 때문에 비주얼 퀄리티나 게임방식 등에서 항상 변화하고 각성해야 했다. 게임은 나쁘다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프로게이머들이 흘리는 땀은 거짓이 아니었다. 스타1 팬들은 카메라를 비추면 얼굴을 가렸는데, 그 문화도 바꾸고 싶어 지금껏 노력을 많이 해왔다.

원석중 : 스타리그는 팬과 밀착되어 있었고, 중계진과 제작진 역시 소통이 가능했다. 제작진은 연출에서 주 시청 층인 10~20대의 감성을 잘 건드렸다. 게임 외의 부분에서 팬들도 공감할 여지가 많았다. 중계나 전개방식, 오프닝 영상 등에서 좀 더 세련되고 프리미엄하게 꾸밀 수 있는 것들을 항상 고민해왔다. 

- 13년간 34번의 스타리그를 거쳤다. 기억에 남는 최고의 리그는.
위영광 : 가장 극적인 결승은 김준영 선수가 변형태 선수로부터 극적인 3:2 역 스윕을 거둔 DAUM 스타리그(2007)였다. 당시 결승 대진으로는 망했다는 얘기가 많았고, 결승전 장소 섭외도 우여곡절 끝에 했는데, 경기는 최고였다. 중국 상해에서 이뤄진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2(2010) 결승전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이영호 대 이제동의 경기로, 리쌍록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중국팬들도 많이 시청하는 걸 보고 게임은 문화가 달라도 이해할 수 있다고 느꼈다. 

원석중 : 김포공항 격납고에서 이뤄진 대한항공 스타리그(2010) 결승전이 스케일이 제일 컸다. 대한항공에서 수리용 격납고를 제공해줘서 비행기 두 대를 놓고 이영호와 김정우가 맞붙었다. 비행기 섭외가 어려웠지만, 연출하면서 욕심을 많이 낼 수 있었다.

- 아직도 스타1리그의 종료를 아쉬워하는 팬이 많다. 왜 사라질 수밖에 없었나.
위영광 : 우리도 계속 하고 싶다. 지난 토요일에 1만 여 명 관중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정말 (스타1을) 끝내는 거냐, 스타2로도 스타1처럼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 미안했다. 그런데 이제 스타1리그에는 선수가 없다. KeSPA(한국 e스포츠협회) 선수들이 다음시즌부터 모두 스타2로 넘어갔다. 선수가 없으면 대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자연스런 시대 흐름이다. 스타2라는 후속작이 나왔는데 15년 전 게임이 아직도 재밌는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다. 프로게이머가 아닌 사람들과 스타1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팬들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 생각했다. 스타1이 남아있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팬을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원석중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다. 스폰서들 역시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다. 블리자드에 얘기해서 아예 스타1을 사자는 얘기도 (제작진끼리) 농담으로는 주고받았다.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있는 스타1 시청자를 위한 콘텐츠는 계속 했으면 좋겠다. 

- 승부조작파문과 블리자드와의 중계권 분쟁으로 스타1이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지적이다. 
위영광 : 처음 (승부조작 사실을) 들었을 때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선수, 팬, 방송사 모두에게 큰 죄를 지었다. 사람들은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땀 흘리는 것에 감동해왔는데, 마재윤이 팬을 떠나게 만들었다. (조작파문은) 더 감동적인 게임을 만들어도 오히려 의심하게 만들었다. e스포츠의 진정성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안 그래도 기성세대 시선이 좋지 않았는데 그 사건으로 스폰서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다. 스폰을 결정하는 마케팅 담당자들은 승부조작 기사만 봤다. 팬들도 많이 떨어져 나갔다. 중계권 분쟁은 팬들이 영향을 받지 않는 사안이었다. 승부조작사건은 중계권 분쟁과 비교할 수 없는 악재였다. 

원석중 : 지난 토요일 결승전에서 현장용 VCR에 실수인지 몰라도 마재윤 사진이 잠깐 나왔는데 팬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마재윤은 승부에 대한 게이머들의 순수한 열정을 매도했다. 게임 외에 볼거리가 많아진 미디어플랫폼의 흐름도 있었지만, 승부조작사건이 스타1의 침체를 가속화시켰다. 이에 덧붙이자면 같은 게임을 10년 이상 하다 보니 전략을 체계화시켜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게임단이 나타나 고도화된 전략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며 임요환의 드랍십 같은 의외성의 재미가 반감됐다.

- 스타2는 스타1에 비해 인기가 없다. 게임채널은 스타1에 의존해왔다. 앞으로 콘텐츠 전략은. 
원석중 : CJ 내부에서는 애플의 아이폰 보급 이후 시청률 형태가 변했다고 보고 있다. 2009년 플랫폼 확장 이후 시청률이 계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e스포츠도 모바일 매체로 확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스타1으로 쌓인 제작노하우를 LOL에 담아 글로벌 전략을 짜고 있다. LOL의 경우 지난 4월부터 영어서비스를 시작하고 중국에서도 방송을 시작했다. 유료결제 같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도 고민 중이다. 또 미국에서 인기가 많은 스타2를 활용할 생각이다. 스타1 선수들의 스토리를 스타2로 잘 옮길 수 있다면 팬들도 스타2로 옮겨 탈 수 있을 것이다. 스타1에서 굉장히 잘했던 이영호 선수가 스타2도 굉장히 잘한다. 

위영광 : LOL이 대세다. 스타만큼은 아니지만 PC방에 가면 다들 LOL을 하고 있다. 또 인터넷 환경이 발달하면서 전 세계인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됐다. 현재 온게임넷의 기본 플랫폼은 TV지만 앞으로 인터넷스트리밍과 모바일로 플랫폼을 늘려나갈 생각이다. 미국과 유럽시장이 크고 있다. 우리는 e스포츠를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든다. 게임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점을 이용해 글로벌콘텐츠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 스타1은 20~30대 남성문화를 비롯해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스타1을 평가해본다면. 
위영광 : 프로게이머들을 보면 대부분 가정환경이 불우한 경우가 많다. 그 친구들에게는 게임이 삶의 돌파구였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직장도 구하기 힘들어지고 삶은 고단해졌다. 그 때 평범한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왔는데 그게 스타1이었다. 사람들은 떳떳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고, 게임 매니아들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게임 산업 자체가 전보다 확장이 스타1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입해서 즐기는 게임이 또 나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스타1은 e스포츠가 하나의 사회문화가 되는 주도적 역할을 해냈다.

원석중 : 내 꿈은 e스포츠를 프리미어 축구 보듯 즐기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13년 했는데, 프리미어리그는 100년 됐다. 앞으로 10년 뒤 스타1 팬들이 40대가 되고 아이를 낳았을 때 즈음이면 e스포츠가 메인스트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게임 PD만의 매력이 있다면. 
원석중 : 게임 아이템이나 캐시를 쉽게 구할 뿐만 아니라 한정판도 구할 수 있어 좋다. 남보다 먼저 출시 전 게임을 해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웃음)

위영광 : 회사에서 게임을 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일이 바쁠 때는 게임을 못해 스트레스다.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만큼 일 할 수 있다. 게임PD들은 젊은 층 문화나 트랜드에도 제일 가까이 있다. 예를 들어 ‘멘붕’(멘탈붕괴)라는 표현도 작년에 LOL에서 나온 단어가 퍼진 것이다. 무엇보다 e스포츠는 한국이 원류이며 우리가 세계 중심에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한국의 게임PD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